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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한 요란스럽게 외부에 소란을 일으켜 적을 교란할 것이었다. 고의적으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만드는 건 고전적이지만 잘 먹히는 방법이었다. 작업을 해두었다면 역시 외성 쪽일 확률이 높겠지.

 어차피 요한을 두고 왔으니까 수상스러운 점이 있다면 그 쪽에서 해결할 터였다.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알아서 해결된다면 가장 좋겠지만, 불가능했을 경우를 대비하는 쪽이 더 합리적이었다. 조슈아는 성벽을 타고 몸을 띄워 올렸다. 하얀 벽돌을 밟으며 그는 눈으로 창문의 순서를 셌다. 밖으로 시선을 돌린 아주 짧은 틈을 타서 움직인다면 역시 가장 치명적인 부분을 노리는 게 마땅했다.

 아발론 왕성에서 고른다면…, 역시 로드의 집무실이겠지.

 조슈아는 발밑을 띄운 뒤 몸을 날려 세로로 길쭉하게 난 창문에 붙었다. 집무실은 천장을 터서 층고가 높았기 때문에 허공을 제법 높게 밟고 올라야 했다. 보초도 없는 새벽에 왕성 벽을 타고 있자니 좀도둑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조슈아는 드디어 도착한 집무실 창틀에 조심스럽게 내려앉아 내부를 살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기척은 느껴지질 않았다. 불이 꺼진 실내를 살피며 그는 창문을 한 번 더 단속했다. 걸쇠가 걸려있는 걸 확인하며 조슈아는 상하좌우를 살폈다.

 창문이 열려있는 곳은 두 곳.

 이런 건 고민할 시간에 그냥 더 빠르게 움직여서 모두를 확인해보는 편이 좋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아래쪽 창문을 타고 내부로 들어간 조슈아는 창틀에서 내려서기 전, 아주 잠깐 멈칫했다.

 “…….”

 몸을 미끄러뜨리는 와중에 손가락으로 쓸어 넘긴 창틀에서 희미한 모래의 감촉이 느껴졌다. 아마 눈으로는 읽지 못했을, 지나치게 희미해서 우연이라고 생각할 만큼 작은 거슬림이었다.

 내부는 조용했고 침입의 흔적은 육안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공간 자체가 무언가를 감춘 듯이 숨죽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자신이 과민하기 때문이길 간절히 바랐다.

 집무실의 바로 아래쪽에 위치한 공간은 휴게실이었다. 주로 사용하는 인물이 정해져 있지 않은 탓에 몰개성한 소파와 테이블 몇 개가 늘어져 있을 뿐, 특별히 중요한 물건이나 감춰야하는 기밀사항은 없었다. 어둑어둑한 방 안에는 부스럭거리는 소음 하나 들리지 않았다.

 조슈아는 아주 조심스럽게 중앙의 테이블 위로 이동했다. 이유를 설명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직감 말고는 달리 말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다. 소리도 기척도 없는 고요한 방 안에 어설픈 흔적 같은 건 없었다. 그가 왕성에 있는 모든 휴게실의 기물 위치를 외우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개성 없이 생긴 공간 따위는 복도의 아무 문이나 열어도 만날 수 있었다.

 조슈아는 테이블 다리를 붙잡고 창문 쪽으로 넘어뜨리며 몸을 숨기는 것과 동시에 문가의 긴 삼인용 소파와 커버가 예쁘게 씌워져 있는 일인용 의자를 염력으로 뒤집어엎었다. 요란하게 가구가 넘어지는 소음 사이로 사람이 공기를 가르며 달려드는 소리가 났다. 타이밍에 맞춰 조슈아는 몸을 숨긴 테이블을 발로 세게 밀었고, 상대방의 무기는 다행스럽게도 단검이었다. 콰드득 뭉개지는 파열음과 함께 테이블 끝으로 뾰족한 단검을 선단이 튀어나왔다.

 어둠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인지했다. 남자는 검은 옷과 복면을 쓰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침입자처럼 보이는 복색이라 조슈아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눈이 마주친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조슈아는 손바닥을 펴 초능력으로 단검을 고정시켰다. 남자가 단검을 회수하는 걸 저지할 목적이었다.

 검을 뽑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는 새로운 무기를 꺼내는 척 위장하며 연막탄을 던졌다. 어차피 제대로 확보되지 않던 시야가 뿌옇게 변하는 순간 조슈아는 펜듈럼 체인을 길게 빼서 휘둘렀다. 바닥을 미끄러지듯 구르며 조슈아에게 접근하던 침입자의 팔이 줄에 휘감겨 제동이 걸렸다.

 무거운 펜던트가 감겨오는 가속도를 이용하여 그의 팔목을 꺾은 조슈아는 남자의 후방을 점하며 염력을 끌어올렸다.

 “숙여라.”

 목뼈가 꺾여 절명하는 걸 피하기 위해 경고와 함께 능력을 발동하자, 무거운 것에 압박당한 것처럼 남자는 바닥에 납작하게 찍어 눌렸다.

 “끄으…흐…!”

 “…소속은?”

 복면을 벗겨내는 것과 동시에 질문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욱한 연막 속에서 인물의 형체 정도는 가늠할 수 있었지만 얼굴까지 식별하는 건 무리였다. 제압까지가 최선인가. 조슈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버둥거리는 남자의 손목을 단단히 구속했다.

 본래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펜던트가 다소 파손됐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고작 짧은 대치만으로도 방 안이 엉망이었다. 목적이 무엇이고 인원이 몇 명인지 자백을 받아내야 하는데 염력을 단시간에 강하게 끌어 쓴 탓에 머리가 아팠다.

 조용한 새벽에 한 바탕 소란이 일었으니 누구든 찾아올 것이었다.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도 괜찮지 않을까. 컨디션 난조 탓인지 호흡이 불편했다. 조슈아는 의식적으로 길게 숨을 내쉬며 명치를 꾹 눌렀다.

 

 꽤나 무거운 하중으로 누르고 있는데도 발밑에 남자는 몸을 뒤틀며 어떻게든 발버둥 치려 들었다. 포기가 느린 놈이었다만, 본래 그렇지 않으면 이런 위험한 임무에는 차출되지 않는 법이었다.

 “크헉, 흐… 설마…, 이렇게… 빨리.”

 “…발각 당할 줄 몰랐나.”

 조슈아는 이마를 짚으며 그의 몸을 수색했다. 암살용 무기 몇 가지와 조명탄 몇 개 그리고 알 수 없는 약품들 두어 병이 나왔다. 머리가 너무 지끈거려서 조슈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힘을 풀었다가는 이 녀석이 자결이라도 하면 곤란했으니 염력을 거둘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두통이 심상치가 않았다. 다소 강하게 끌어올리긴 했지만 부하가 걸릴 만큼 많이 사용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생각을 이어가는 와중에 욕지기가 치밀었다. 참기 힘든 구역감이었다. 할 수 있으면 뇌의 부품들을 죄다 꺼내서 세척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머리가 아프다 못해 뒷목이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조슈아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눈을 세게 깜빡였다. 어서 누군가 저 문을 열고 들어와 당장 그를 바깥으로 보내줬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 토하러 가고 싶은 기분이 간절했다.

 “아,니,…흐….”

 무거운 것에 짓눌린 채로 몸부림을 치느라 코피가 터진 침입자가 새빨간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는 정확하게 조슈아의 눈을 보고 있었다.

 -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고.

 그는 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는 입 모양을 그렇게 벙긋거렸다.

 “…….”

 설마….

 조슈아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응이 느렸다. 손가락 끝이 저려왔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왔다. 어떻게든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해 봤지만 잘 생각나지가 않았다.

 비슷한가? 전조 증상이 뭐였지? 사고가 느려지고 몸이 둔해지는 게 시작이던가? 지금과 비슷한 것도 같았고 전혀 다른 것도 같았다. 머리에 누군가 손을 넣어 헤집고 있는 것처럼 제대로 생각이 이어지질 않았다. 경악보다는 허탈한 기분이 더 강했다. 어떻게… 어떻게 몸으로 기억한 것들을 시간이 지났다고 전부 잊어버릴 수 있는 거지.

 정말 이게 자신의 생각과 같은 작용을 하는 약품이라면 겪자마자 떠올려내야 하는 게 아닌가?

 “…젠장.”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상태는 초침이 움직이는 속도와 비슷하게 점점 나빠져 갔다. 조슈아는 무너지려는 몸을 가까스로 지탱했다. 머리가 명료하질 않아서 그는 더듬더듬 벨트 밑에 숨겨두었던 손가락만한 칼날을 꺼냈다. 손목이 묶였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상비하는 날붙이였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길이의 칼날을 세워, 그는 허벅지를 찔렀다. 이지가 흐려지고 점점 혼탁한 감각 속으로 빠져들어 갈 때 스스로를 그 안에서 꺼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날카로운 고통이 잠들어가는 감각을 깨웠다.

 “제국 소속인가.”

 남자는 실성한 것처럼 웃었다. 고통이 마비된 것처럼 사지를 이상하게 꺾으며 그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궁금해?”

 알려줄 마음이 없어 보이는 남자는 다만 초능력자를 만날 거라는 정보를 입수했을 뿐이라며 킬킬거렸다. 조슈아는 허벅지에 꽂은 칼날을 조금 더 깊게 누르며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누군가 머리를 날카로운 것으로 쪼개는 것 같은 이 끔찍한 두통은, 실험실에서 겪은 것과 비슷했다. 아마도 조금 전 터진 연막탄에 비슷한 증상을 부르는 약품이 섞여있었던 모양이었다. 정보가 있었다면 초능력자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종류로 준비해왔을 테지.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는데도 능력이 묶이진 않은 걸 보면 역시 초능력을 과하게 강화시킬 때 사용하던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짐작되었다. 실험실에서 부작용을 견디다 못하고 피를 토하며 죽었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조슈아는 울컥 치솟는 구역감을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누가 당장.

 누가 당장 나타나서….

 ‘이 자를 데려가야 하는데.’

 조슈아는 서늘한 눈으로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는 승리한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처음 발각당한 순간부터 저들이 준비한 기책을 알맞게 사용하게 된 게 몹시도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죽는 것보다도 더 기쁜 모양이지?”

 여러 번 짓씹은 입술이 너덜거렸지만 조슈아는 웃었다.

 과부하 실험은 어차피 물릴 만큼 받아보았다. 사선을 넘지 못한 아이들이 매일매일 바로 옆에서 죽어나갔고 조슈아 역시 지옥의 문턱을 몇 번이나 밟았다가 도로 쫓겨나곤 했다. 그는 질길 만큼 살아남았고… 겨우 이까짓 걸 견뎌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깟 통증 따위….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왈칵 치솟는다 싶더니 참을 새도 없이 입술을 비집고 뜨거운 핏물이 후두둑 쏟아졌다. 녹슨 쇠 맛이 입안에 가득했다.

 곤죽이 된 뇌는 닥치는 대로 눈앞에 보이는 모든 걸 부수고 싶은 파괴충동에 시달렸다. 손톱 끝으로 아슬아슬하게 가느다란 실 끝을 붙잡고 있는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이걸 놔버리고 편해지라고 달콤한 목소리가 종용했다.

 

 조슈아는 남자의 목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자를 흔적도 없이 뭉개버릴 수도 있었다. 컨트롤이 불안정하게 일렁거렸지만 어차피 부수는 것쯤이야… 세밀하게 출력을 조절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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