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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의뭉 떠는 것 같기도 했고 반면에 난감해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타인의 변덕에 실컷 눈칫밥을 먹은 하루의 끝에서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타난 남자의 의중까지 파악하는 건 사양이었다. 마땅한 사유가 없다면 대충 업무 외의 문제로 취급해도 되겠지. 조슈아는 탄식 섞인 한숨을 뱉은 뒤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 친절해 보이는 남자가 앞에서는 저에게 모나게 굴지 않았음에도 마음 깊은 곳 어디서는 타국의 사령관이었던 자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도 본능에서 우러나는 거부감을 이성으로 잘 찍어 누르는 타입일 것이다. 충성에 사족을 붙이지 않는 사람이 마음 깊이 와 닿지 않는 명령을 받게 되면 취하는 행동에 대해서 조슈아는 싫을 만큼 잘 알고 있었다. 남자의 행동양식에서 기시감이 느껴질 때마다 그는 조금 진저리가 쳐졌다. 보고 싶지 않은 자기혐오가 옅은 거부감 아래서 일렁거렸다.

 

 “…정말로 당신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찾아온 건 아닙니다. 하시는 얘기도 전부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그의 말은 어쩐지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타인의 앞에서 마치 ‘그래야 한다’ 고 늘어놓는 다짐처럼 보였다는 얘기였다. 조슈아는 추궁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차가운 종탑 위에서 추가 근무를 하고 있는 이 실정에 누군가와의 불편함까지 표면으로 꺼내놓는 건 지나치게 고단한 일이었다.

 

 대충 상황을 정리할 무슨 말이라도 꺼내놓으려던 순간, 옆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던 요한이 몸을 일으켰다.

 

 “잠시만요….”

 

 그의 몸이 자신을 스쳐지나가 난간 쪽으로 향했다. 요한은 벽에 비스듬히 기대 몸을 숨기며 바깥을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었다.

 

 뭘 보고 있는 거지.

 

 어느 한 점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시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조슈아 역시 고개를 내밀었고 옅은 섬광처럼 규칙적으로 반짝이는 불빛이 보였다. 착각인가 싶어 눈의 깜빡임을 의식적으로 멈추고 외성을 바라보자 다시 한 번 더 규칙적인 불빛이 보였다. 성벽 위에서 보내지는 의도를 가진 신호였다. 가로등이 고장 난 게 아닐까. 애써 선해하려 해봐도 드넓은 성벽위에는 광원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저건 누군가가 직접 광원을 들고 올라가서 흔들고 있다는 뜻이었다.

 

 “…침입자입니다.”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요한의 목소리를 들으며 조슈아는 침음을 삼켰다. 보초를 서다보면 이런 일을 원래 자주 맞닥뜨리는 건가. 분명 그냥 평범하게 자리만 지키다 오면 된다고 들었는데….

 

 몸은 오전부터 이어져 온 피로와 긴장으로 무거웠다. 설마 이 시각에 왕성으로 들어오는 침입자를 잡는 임무까지 추가 될 거라고는 그 빌어먹을 계단을 오르는 순간까지만 해도 짐작하지 못했다.

 

 누구라도 붙잡고 한탄을 늘어놓고 싶었지만, 옆에 있는 남자는 무섭도록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슈아는 포기가 빠른 것만큼은 자신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뒤집어쓰고 있던 담요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자 어쩐지 처음보다 더 바람이 매섭게 느껴졌다.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

 

 요한은 눈을 가늘게 뜨며 조슈아를 쳐다보았다. 의도를 의심 받고 있는 것 같았지만, 어차피 믿음이라는 건 설명으로 해결할 수 없는 범주에 속해있었으므로 조슈아는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슈아 경…. 함께 가시죠.”

 

 “…됐습니다.”

 

 “혼자보다는 2인 1조가 조사하기에 더 편할 겁니다. 만약 저 신호를 받아야 하는 쪽이 내부에 있다는 가정을 한다면 더더욱요.”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조슈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짓하자 요한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남자가 계단으로 향하기 전에 조슈아는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이쪽입니다.”

 

 조슈아가 난간 밖을 가리키자 요한은 고개를 기울이며 난간을 향해 가까이로 다가왔다.

 

 “뛰어내리는 겁니까?”

 

 요한이 미심쩍게 아래를 가리켰고 조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탑은 성벽보다 높게 설치되어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외성과 이어지는 통로가 없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지면을 밟은 뒤에 도로 성벽을 올라야 했다. 당장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불빛을 쫓는 주제에 그렇게 여유로울 시간이 없었다.

 

 “잡아드릴 겁니다.”

 

 “고소공포증이 없어서 다행이네요.”

 

 작게 중얼거리며 요한은 난간을 밟았다. 혹시라도 망설일까봐 조슈아는 손가락을 까딱해 착지점을 표시한 다음 스스로 먼저 아래로 몸을 던졌다. 중력이 이끄는 대로 자유낙하를 시작한 몸의 무게중심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유지하다가 성벽에 닿기 직전 염력을 이용해 몸을 띄웠다. 거슬러진 중력 탓에 옷자락이 펄럭거렸다. 뒤꿈치가 부드럽게 닿는 순간 무릎을 아주 살짝 구부려 앉으며 저항을 최소화했다.

 

 자신의 몸을 들어 올리는 건 수백 번도 넘게 했으니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잡아당겨도 괜찮았지만 아마 처음인 사람은 불안할 것이다. 위를 올려다보자 신호라고 생각했는지 재빠르게 난간에서 뛰어내리는 요한이 보였다. 바람의 저항이 꽤나 강할 텐데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 것 같았다.

 

 안 잡아줘도 사실 크게 다치진 않을 것 같은데…. 다만 소리가 크게 나겠지. 생각하며 조슈아는 자신보다 더 이른 타이밍에 그를 들어올렸다. 사뿐하게 바닥을 디디는 순간까지 참아준 조슈아는 눈짓과 함께 성벽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침입자의 위치를 알리던 불빛은 어느새 끊어져 있었다.

 

 “내성에는 결계가 쳐져있어서 침입당하는 순간, 신호가 울릴 겁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저희는 바깥 쪽을 먼저 잡도록 하죠.”

 

 소리 없이 따라 붙은 요한이 작게 속삭였다. 저렇게 무거운 걸 걸치고 있으면서도 부딪히는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그런데 조슈아 경. 펜듈럼은 안 쓰십니까?”

 

 “네?”

 

 “능력을 쓰실 때 번쩍하는 거, 안하시는 것 같아서요.”

 

 “이 어두운 데서 그런 걸 터뜨리면 눈치채달라는 뜻 아닙니까.”

 

 어처구니가 없어서 대꾸하자 요한은 눈을 둥그렇게 뜨며 되물었다.

 

 “저는 늘 사용하시기에 염력을 구동하는데 필요한 물건인 줄 알았습니다.”

 

 “그냥 몸에 익어서 습관적으로 쓰는 것뿐입니다…. 손가락으로 표적을 가리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의 시시껄렁한 질문에 대답해주다 보니, 문득 마음 구석에서 그 말이 진짜냐고 고개를 내미는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처음 받은 선물이라서가 아니고? 내면에서 깔깔거리는 비웃음이 소용돌이쳤다. 인상을 구기며 조슈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시끄러워.

 

 비우고 지워도, 사라지지 않는 그녀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배 속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전부 토해낼 수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진작 이걸 버려버릴 수 있었을까.

 

 습관적으로 들고 있던 펜듈럼의 끝을 지그시 움켜쥐었더니 손바닥에 따끔거리는 고통이 느껴졌다.

 

 무언가를 가만히 생각하던 요한은 불쑥 말했다.

 

 “그럼, 평소에는 눈치채달라는 뜻이었습니까?”

 

 “……?”

 

 “…전부터 줄곧 궁금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을 휘두르면서도 공격 타이밍을 일일이 적에게 알려주는 건, 어째서입니까.”

 

 말문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마음에 이는 파문에 실수로 발이 느려질까봐 조슈아는 의식적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돌 벽을 밟고 있는 발바닥의 촉감에 신경을 억지로 집중시키며, 조슈아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어차피 원거리에서 사용하는 능력이라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한 타이밍 늦게 내놓은 답에 요한이 납득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조슈아 자신만큼은 어쩔 수 없는 갑갑함을 느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걸, 사실 싫어하시나요?”

 

 뒤통수에서 요한의 시선이 느껴졌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신이 이 능력으로 얼마나 더러운 공작들을 하며 지내왔는지 짐작도 못하는 인간이나 할 법 한 이야기였다. 순진한 건지 아니면 그렇게라도 제국의 전 사령관에게 느끼는 거부감을 억누르고 싶은 건지. 그가 아무렇게나 자신을 오해하는 것을 방치하며 조슈아는 몸을 깊게 숙였다. 어느새 불빛이 깜빡이던 지점에 도착해 있었다.

 수상한 신호가 오가던 곳은 전시 상황이 아니면 비워두는 외성의 감시초소였다. 자주 사용하는 곳은 아니었기에 화살받이 용도의 얄팍한 목재 가림판 정도밖에 없는 곳에 발자국이 흐릿하게 찍혀 있었다.

 “흙이 아직 마르지 않았어요…. 멀리 못 갔을 겁니다.”

 “반대 방향으로 흩어져서 찾아볼까요?”

 “아뇨. 요한 경이 성벽을 위를 도십시오. 저는 아래로 내려가겠습니다.”

 

 외성에서 경계를 서지 않고 자리를 이동했다는 건 아마도 숨겨진 동료를 만나기 위함일 가능성이 높았다. 더 깊숙한 곳에 미리 침입시켜놓은 자들인지 혹은 내부 조력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탈출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놈들일 수도 있었다. 흘끔 뒤를 돌아보자 요한은 다소 복잡한 표정으로 조슈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설득 따위에는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조슈아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한 수 접어주었다.

 “기동력이 제가 더 좋을 겁니다. 숨어서 움직이는 것에도 제가 더 능숙할 거고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몸조심하세요.”

 

 석연치 않은 얼굴을 하기에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요한은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슈아는 몇 번이고 그의 기색을 살피다가 이내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렇고 그런 어설픈 놈들은 아니었는지 초소에서처럼 발자국이 남아있진 않았다. 흔적을 더듬는 대신 조슈아는 경험에 의지해 몸을 움직였다. 만약 제가 소수의 인원으로 침입자를 막는 결계가 쳐진 왕성으로 숨어들어야 했다면 어떻게 움직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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