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아는 얼굴이었다.

 

 조슈아는 혀를 찼다.

 

 “아는 인간입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 요한의 눈썹이 꿈틀하며 움직였다. 그의 내면에 어떠한 감정이 일렁였는지 알지 못했지만 조슈아는 담담히 남자의 정체를 설명했다.

 

 “갈루스가 카르티스…의 이름 아래서 하나로 규합되는 과정에서 숙청당한 귀족원 쪽 인물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치워버렸던 귀족 중 하나가 부리던 별동대 소속이었습니다.”

 

 “대장 어째서…….”

 

 남자는 절망적인 얼굴로 바닥을 긁었지만 조슈아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그의 턱을 움켜쥐었다.

 

 “개국공신 가문에 속했던 자라서, 정리하기 전까지 가장 큰 세력이었습니다. 마도혁명을 극렬하게 반대하던 집안이었기도 하고…. 그의 수족을 자르기 위해 사병을 밀어버릴 당시에 마주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공작의 오른팔이던가?”

 

 거의 정확하게 남자의 정체를 짚어내자 그는 약한 척 구는 것을 그만두었다.

 

 “……크큭. 우리 대장님은 왜 이렇게 기억력이 좋으실까. 남의 저택 하나를 뼈대까지 남김없이 불사르던 와중에 고작 이 놈의 얼굴까지 전부 기억하실 줄이야?”

 

 낯빛을 싹 바꾸며 빈정거리는 것을 내려다보며 조슈아는 머리를 쓸어 올렸다.

 

 “살려달라기에 살려줬더니 아마도 이런 걸 하고 싶었나보군요.”

 

 어차피 이 자와는 대화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설득해야 할 인물은 남자를 밟고서 의뭉스런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요한이었으니까. 증명할 수 있는 방법? 그런 게 있나? 하지만 이 자와 내통을 했다는 증거 역시 없기는 마찬가지일 테니 말하자면 그는 지금 출발선에 선 것이었다. 물론 요한 개인이 가지고 있던 자신에 대한 선입견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발각되면 그렇게 입을 맞추기로 한 건 아닙니까?”

 

 “지금 상황을 먼저 수습한 뒤에 증명하겠습니다. 이자의 신원을 밝힐 수 있는 자료가 아직 남아있을 겁니다.”

 

 조슈아는 잡고 있던 남자의 아래턱을 힘주어 벌렸다. 하악을 부숴버릴 수도 있는 악력이 가해지자 남자는 불안에 젖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벌어지는 입 가장 깊숙하게 손을 넣어서 더듬거리자 헛구역질이 몰려오는지 그는 자꾸만 몸을 뒤틀었다. 우욱거리는 생리반응을 무시하고 조슈아는 어금니 안쪽으로 엄지를 밀어 넣었다.

 

 “어제의 적과 오늘 손잡는 건 목적만 같다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가 하는 꼴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요한은 웃음기 하나 없이 말했다.

 

 “제가 기사단 숙소를 폭파시켜서 뭘 얻겠습니까.”

 

 조슈아는 한참이나 남의 입 안을 헤집다가 가짜 치아를 하나 뽑아냈다. 목숨을 내던져서 임무를 수행하는 놈들이 마지막까지 숨겨야 하는 것들을 보통 수납하는 장소였다. 녀석들이 벽면에 발라놓은 걸 떠올려보자면 자결용 독 보다는 아마도 불씨를 일으키는 물질이 들었을 것이다. 작은 충격에도 폭발하는 물건일 테니 옷자락을 찢어 치아를 조심스럽게 한 겹 더 감쌌다.

 

 “…아무것도 얻을 수 없더라도 멈추지 못하는 게 있지 않나요.”

 

 “…….”

 

 “복수라던가. 원한 갚기라던가. 그런 종류의 감정은 생의 마지막을 불사를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이 자처럼.”

 

 요한은 시비를 걸기 보단 그저 가능성을 나열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반박하기에는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은 그렇다면 무엇의 복수를 해야 하지? 내가 잃은 건 무엇이기에?

 

 충심이라기엔 조슈아의 인생을 가장 크게 망가뜨린 자가 그 가운데에 있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망가진 삶에 대한 복수라기엔 그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을 불태울 동력이 남아 있었더라면 애초에 아발론으로 이적한다는 선택지를 고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제가 복수심을 품는다면 그 칼날은 어딜 향해야 한단 말인가.

 

 조슈아는 바닥에 고꾸라진 남자를 흘끗 내려다보았다. 이 자는 지옥의 끝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거겠지….

 

 그렇다면 내가 지옥의 끝에서 본 건 누구일까.

 

 어차피 공백으로 비어있는 답안지를 그에게 내미는 대신 조슈아는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맞습니다. 어차피 제가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이 자가 저에게 원한을 갖고 있다, 정도가 전부겠죠.”

 

 조슈아가 나지막이 대답하자 요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

 

 “맹세코 이 남자와 그 어떠한 밀약을 나눈 적은 없지만… 책임소재를 묻는다면 결국 이런 일이 생긴 건 저 때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저지른 수많은 악행의 대가이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

 

 “이 부분은 당신의 생각과 저의 생각이 일치하는 모양이니, 일단 이 자리를 수습해도 되겠습니까? 그 외의 문제는 로드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요한의 얼굴은 어두운 곳에서 아주 자세히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만 움직였기 때문에, 조슈아는 그 생각에 잠긴 얼굴을 꽤 긴 시간을 들여 지켜봐야 했다. 천천히 움직이는 속눈썹이, 무언가를 고민하는 무감한 입매가 힘을 빼지 않은 팔뚝의 힘줄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망막에 맺혔다.

 

 “조슈아 경은… 자기변명이 항상 그 정도에서 그치네요.”

 

 …뭐라는 거야. 여차하면 당장 칼이라도 휘두를 것처럼 남을 압박해놓고.

 

 조슈아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서 대답했다.

 

 “지금 제 등 뒤에 있는 벽이 화약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요한 경은 제가 말실수라도 했다간 당장에 목을 그을 것처럼 무기를 들고 계시고요.”

 

 “아…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무서우셨나요?”

 

 요한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희미하게 웃으며 검을 갈무리했다.

 

 아무래도 제압중인 상대가 있어서 고삐를 쥐고 있었을 뿐입니다.

 

 말하며 요한은 바닥에 들러붙어 조용히 기회를 살피던 남자의 목을 짓눌렀다. 기도를 정확하게 누르며 숫자를 세는 걸 보아하니 이런 식으로 사람을 기절시키는 게 처음은 아닌 것 같았다. 고결하고 명예로운 기사처럼 구는 사람이 의외로 더러운 꼴은 자주 보며 살아왔나보군.

 

 …이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조슈아는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은, 지저분한 과거를 끌어안고 있는 탓에 그 무엇도 고결해질 수 없을 것만 같은데.

 

 “…….”

 

 사지를 펄떡거리던 남자의 팔 다리가 죽은 것처럼 축 늘어지자 요한은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제가 이제 위협할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말한다면 당신의 태도에 변화가 생기나요?”

 

 “…무슨 말이 듣고 싶은지 모르겠네요.”

 

 “그냥… 조슈아 경은 항상 그 정도에서 그치더라고요. 오늘 낮에 있었던 일도 그렇고 지금 이렇게 내통 의혹을 사고 있으면서도 별로 억울해보이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해명하려는 기색도 없고….”

 

 “무슨 소린지. 엄청 억울하고 분합니다. 지금 목숨을 걸고 해명하고 있는 게 안 보이십니까?”

 

 “저도… 처음에는 그렇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로 사람이 필사적이 되는 순간을 지켜보다 보면 깨달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렇게 가능성을 따지며 차분한 음성으로 논리적인 설명을 늘어놓는 게… 얼마나 이성을 기반으로 둔 행동인지.”

 

 “…저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십니까?”

 

 조슈아는 참지 못하고 빈정거렸다. 당신이 나에 대해서 알면 뭘 얼마나 알고 있다고 그렇게 다 꿰뚫어보는 듯 말하는 거지.

말미에 묻은 짜증을 숨기지도 못했는데 요한은 그저 스스럼없이 웃을 따름이었다.

 

 “당신의 삶의 궤적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의 조슈아 경에 대해서는… 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만.”

 

 “요한 경 답지않네요…. 그런 발언.”

 

 “궁금해서요. 자신을 지키는 일에는 하나도 필사적이지 않는 주제에, 어째서 당신은 남을 살릴 때만 그렇게 구는지….”

 

 뒷말은 너무 작은 소리였기 때문에 미처 듣지 못했다. 요한은 다만 물끄러미 조슈아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알 같은 눈동자였다.

 

 “더는 어쩌지 못하는 순간이 오니까 그런 것들이 궁금해지더라고요…. 저도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뭘 어쩌고 싶은지.”

 

 “…….”

 

 “당신과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요한은 누군가와 얘기를 한다기보다는 마치 자기 자신의 상태를 그저 말로 꺼내놓으며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사람 같았다. 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동자라던가. 지금 한시가 급한 와중에 여기서 자신을 붙잡고 의미 없는 시간을 허비하는 행동이라던가. 하여간 제대로 된 게 하나 없었다. 조슈아는 각오를 다지듯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요한 경. 저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솔직하게 알고 있는 것들을 먼저 털어놓으십시오.”

 

 “네?”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지만 조슈아는 그게 퍽 가증스럽다고 생각했다.

 

 “묻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자꾸 이상하게 굴면 사실은 뭐라도 말하고 싶은 건가 생각하게 되잖습니까.”

 

 “…….”

 

 요한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기에 조슈아는 혀를 찼다. 남자에게 회수한 가짜 치아를 흙바닥 속에 묻으며 염동력으로 작게 표시를 남겼다. 물에 수장시키는 게 가장 좋긴 하겠지만 증거물이 될 수도 있으니 등 뒤의 화약을 해결한 뒤에 회수할 요량이었다.

 

 “애초에 종탑에는 왜 올라오신 겁니까. 제가 신경 쓰였다는 거짓말을 저도 믿고 싶었는데 이런 사건을 겪으면서까지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생각할 만큼 순진하지 않습니다.”

 

 “아아…. 설마 제가 이 사건의 배후에 엮여있는 거 같습니까?”

 

 요한은 계속 해보라는 듯 팔짱을 끼고 턱을 느리게 쓰다듬었다. 순진한 낯으로 저렇게 구는 꼴이 오히려 위협적이었다. 한숨이 참아지질 않았다.

 

 “…그런 식으로는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아무것도 몰랐다기에 당신은 종탑에서 여러 번 시간을 확인했고,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났어도 금방 사라져버렸을 외성의 불빛을 발견했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

 

 “제가 단독행동을 하도록 놔두었고… 아직까지도 지원 인력이 도착하지 않을 걸 보면 다른 사람에게 이 일을 알리지도 않았어요. 지금도 급한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시간을 끌고 있는데 의심하지 않기가 더 어렵죠.”

 

 “예상외로 날카로우시네요….”

 

 “…무엇보다 그 시계.”

 

 조슈아는 요한이 줄곧 꺼내보며 시간을 확인하던 회중시계를 가리켰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