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움직입니다.”
“…….”
“멈춘 시계를 들고 대체 뭘 확인한 겁니까?”
“…음. 미처 몰랐네요.”
요한은 시계를 몇 번 달칵거리더니 정말로 분침이 움직이지 않는 걸 확인하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신경을 못 썼습니다. 시간 같은 걸 보지 않아도 너무 몸에 익어버려서.”
“…정보원이 있습니까? 그래서 시간이 특정 된 건가요?”
“그럴 리가요.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치밀함이나 섬세함 쪽으로는 재능이 없거든요. 지금도 보세요. 조슈아 경한테 들켰잖아요.”
“…….”
조슈아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요한을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내일 아침 식사 메뉴를 말하기라도 한 것처럼 너무나 평온하고 일상적인 낯이었다.
“다음번에는 시계가 움직이는지 꼭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왜 이런 일이 또 있을 것처럼 말하는 겁니까.”
요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투명한 유리알 같은 눈동자를 꺼풀 속으로 잘 감추며 만들어진 가짜 같은 웃음을 지을 따름이었다.
만약 자신이 조금만 더 비현실적인 사고에 유연했거나, 체자렛 같은 마도사가 세상에 몇 더 존재한다고 믿었더라면 이 자는 요한의 얼굴을 뒤집어 쓴 아예 낯선 사람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몰랐다.
요한은 아주 느리게 조슈아의 팔꿈치를 붙들었다.
워낙 느릿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다가오는 동안에는 위협을 느끼지 않았지만 실제로 그의 서늘한 손가락이 팔꿈치에 감기자 조슈아는 불행한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문득 남자를 포함해 모든 것이 낯설어지는 기분이었다.
요한 테일드는… 본래 어떤 식으로 말하고 움직였더라….
“조슈아 경… 제가 하는 말은 뭐든 믿을 겁니까?”
“들어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저는 사실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이들과 아무런 연관도 없고 지금의 테러 사건에는 무고하다는 걸.”
“…….”
“애초에 보초를 대신 서주지 않았으면 이런 일에 휘말릴 일도 없었겠죠. 당신은 그저 불행한 사고를 겪고 있는 중일뿐입니다.”
너무 순순한 확신이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매도하던 일이 마치 없었던 것 마냥,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매끄러운 태세전환이었다. 위화감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위화감을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요한은 웃으며 한 걸음 다가왔고 조슈아는 벽으로 물러섰다.
“종탑에 왜 올라왔느냐고요? 당신은 혼자두면 신호를 다소 늦게 발견하거든요. 그리고 타이밍이 어긋난 채로 수로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놈들을 마주치죠.”
요한이 걸음을 딛을 때마다 조슈아는 한 걸음 더 물러서는 걸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등 뒤는 더는 피할 공간이 없었다.
“…꿈이라도 꾸셨습니까?”
“맞아요. 제법 지독한 악몽인 것 같아요.”
“…….”
“이 뒤부터는 안 듣는 게 좋을 텐데, 그래도 계속 듣고 싶습니까?”
“……날이 밝으면 치료를 받으러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벽과 요한 사이에 갇혀서 남자의 눈동자를 억지로 들여다보게 된 조슈아는 그 안에서 일렁거리는 흉포하고 무자비한 어떠한 감정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몸이 조금씩 가까워왔다. 당장 이 남자의 손에 머리가 으스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기세였다. 조슈아는 손가락 끝에 힘을 불어넣으며 몸을 긴장시켰고 요한은 눈꼬리를 접으며 빙그레 웃었다.
“당신은 오른 손이 날아가요. 화약이 묻었거든요.”
조슈아는 오른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가 눈치 채고 있었다.
“그리고 허벅지가 창에 꿰인 채로 이곳까지 밀어붙여지죠. 도화선을 당길 불씨로써.”
“…….”
“당신은 자기를 보호하기보단, 등 뒤의 벽을 지키는 걸 우선시하느라 무리하게 염력을 쓰게 되고 정작 앞에서 오는 공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어서… 수많은 사상자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제가 숨기고 있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죠?”
시선이 얽힌 상태로 조슈아는 자신이 목격한 것을 천천히 곱씹고 해석해냈다. 그에게는 퍽 익숙한 감정이었다. 요한은 지금….
“…이제는 그것보다 더 급한 질문이 생겼는데… 대체 왜 화를 내시는 겁니까.”
“하하… 제가요…?”
그렇게 되묻자 요한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웃었다. 너무 평온한 낯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서웠다.
“음. 화가 난 것과는 조금 다른데…. 화가 난 걸까요, 저는?”
“…….”
“저는 그냥 조슈아 경이 온전하게, 팔 다리가 모두 붙은 채로 여길 나갔으면 바랄 뿐인걸요.”
그가 잡고 있던 팔꿈치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당장 자길 죽일 것처럼 구는 남자가 하는 말이라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애틋한 목소리였다. 조슈아는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믿느냐고 물었습니까.
“그럴 리가요.”
조슈아는 손가락 끝을 물어뜯었다. 화약이 묻었던 범위보다 조금 더 넓게. 끔찍한 통증과 함께 떨어져 나간 살점을 바닥으로 퉤 뱉으며 그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았다. 남자는 정신이 아픈 게 분명했고, 그는 등 뒤에 화약을 지고 있었으며 작은 불씨에도 여긴 불바다가 될 수도 있었다.
“당신은 저를 죽이고 싶은 모양입니다.”
“…음.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이번에는 영 틀렸다는 건 알겠네요. 역시 시계를 더 주의하도록 할게요. 얼굴에 불신이라고 쓰여 있잖아요, 지금.”
요한은 선선하게 그렇게 대답했다.
어둠과 고요 속에서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무기끼리 맞부딪치는 건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요한이 휘두르는 대검을 크게 튕겨내고 남자의 균형을 무너뜨리려던 순간, 조슈아는 눈 앞에서 그의 팔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꺾이는 장면을 아주 느리게, 지켜보았다. 혼자만 다른 중력위에 얹어진 것처럼 천천히 칼날은 급소를 향해 휘둘러졌고… 궤도를 이탈한 무기가 처참히 요한의 동맥을 그어나가는 걸 조슈아는 다소 멍한 머리로 인식했다.
다시 할게요.
요한의 입이 그렇게 벙긋거린 것도 같았다.
BAD END. 당신은 사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