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테일드가 반복되는 하루의 조건을 알아낸 건 여섯 번째부터였다. 트리거는 자신의 죽음이었다. 처음에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워낙 많이 죽은 밤이었기 때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왕성 붕괴사고로 인해 몇 십 명이 죽어나갔다. 그리고 눈을 뜨니 다시 사고가 일어나기 전날 새벽이었다. 처음에는 지독한 악몽을 꿨다고 생각했더랬다. 꿈에서 깨어나는 악몽을 반복해서 겪은 뒤에야 혹시나 그것이 예지몽이 아니었을까 하는 사고에 다다랐다.
그는 비현실적인 일에 대한 면역력이 낮은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반복되는 테러와 죽음을 피부로 겪으면서도 이것이 꿈도 환상도 기분 나쁜 저주도 아니라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허무맹랑한 현실이라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제법 시간이 오래 걸렸다.
신의 질 나쁜 장난 같은 현상 속에서도 요한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이 죽으면 하루가 되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적극적으로 목숨을 내던져 사상자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몇 십 명에서 시작된 사망자가 한자리로 떨어지기까지는 금방이었다.
일곱 번째는 수 십 명. 여덟 번째는 그것보다 조금 줄어서 열일곱 명. 아홉 번째는 열 명. 열 번째는 조금 실수를 해서 다시 열다섯 명. 열한 번째는 여섯 명…. 그때까지는 아직도 그것을 기회나 축복 정도로 여겼다. 순진한 생각이었지만 노력으로 타인의 목숨을 구하는 건 고귀한 일이었으니까. 반복되는 죽음이 트라우마를 남기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기꺼이 다시 하루를 시작했다.
테러의 내막을 파헤치고 범인을 찾아 헤매고 붕괴 사고를 저지하기에는 하루가 짧았다. 그는 늘 방에서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바쁘게 내달렸다.
가장 마지막은 조슈아였다. 이 남자는 살리기가 제법 어려워서… 요한은 꽤나 긴 시간동안 사망자를 두 명에서 줄이지 못했다. 그는 종탑에서 내려 보내 봐도, 왕성 밖으로 피신 시켜 봐도, 로드의 곁에 붙여놓아도 마치 자석에 이끌리는 사람처럼 사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협박하든 설득하든 변하는 건 없었다. 조슈아는 매번 필사적으로 나타나 요한을 돕다가 죽었다. 어떻게든 사지로 굴러들어오는 남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 그들은 제법 긴 시간을 반복했다. 조슈아의 사고방식, 행동 패턴, 말버릇 같은 작고 무수한 정보들이 켜켜이 쌓여갔다.
그리고 기어이 조슈아를 죽음으로부터 비켜나도록 만든 순간, 요한은 환희에 차오르기도 전에 죽었다. 이번 회차의 사망자는 한 명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하루의 시작이었다.
요한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회귀에 원인이 붙어야 한다면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납득하지 못하고 여전히 조슈아를 살렸다.
축적된 정보로 인해서, 물론 가끔씩 죽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 조슈아는 꽤나 자주 살아남았다. 자신보다 오래 살아남은 조슈아는 그가 죽을 때 꽤나 무참한 표정을 하곤 했다.
요령이 더 생기면 그 남자를 멀리 보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요한은 망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하루는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즈음부터 요한은 미쳐가기 시작했다. 여태까지의 무수한 죽음이 버틸 만 했던 건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물론 자신의 죽음이 애석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것이 안배된 운명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실은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이 끔찍한 지옥을 끝낼 수만 있었다면 뭐든 좋았다. 그래서 언제 마지막이 오더라도 괜찮게끔 그는 여전히 사람들을 살리러 다녔다. 반복해서. 계속. 여러 번. 셀 수 없이 많이.
어느새 행동은 기계적이고 작위적으로 변해 있었다. 이제는 너무 익숙하게 자신의 방에서 눈을 뜨면 일어나서 집무실에 있는 로드를 억지로 휴식을 취하도록 내려 보내고,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회중시계를 챙겨 종탑에 올라가는 게 일과가 되었다. 조슈아를 만나고… 그와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가… 침입자를 저지하는 매일이… 지독하게 반복되었다.
유일하게 조슈아와 만나서 나누는 대화들만이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변주되었다. 요한은 그걸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고선 무수한 재시작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가 조금이라도 다른, 이것이 꿈도 환상도 아니라는 자극이 필요했다. 조슈아에게도 몇 번 죽어보았다. 염력은 의외로 고통 없이 사람의 생을 마감시켜주었다.
…그리고 요한은 정말로 진심으로 이 짓을 그만두고 싶었다. 가끔은 너무 지친 나머지 자신의 방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죄책감에 시달렸다.
만약 정말로 자신이 기다려온 ‘끝’이 오늘이었다면 대체 몇 명이 죽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어쩔 수 없이 그는 다시금… 종탑을 오르고 마는 것이다.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이 끝나지 않을 계단을 밟았다.
나선형 계단을 타고 빙글빙글 시야가 돌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계단을 오르고, 오르고, 오르다 보면 조슈아가 눈에 보였다. 남자는 오늘도 추워 보이는 차림이었다.
모포를 건넸더니 그는 티 나지 않게 반색했다.
그와는 홍차를 마신 적도, 샌드위치를 먹은 적도, 입을 맞춘 적도 있었다. 서로에게 무기를 겨눈 적도 있었고, 뒤통수를 맞은 적도 있었다. 그의 상처를 파헤쳐 본 적도 있었고, 크게 울려본 적도 있었다.
모두 자신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지금은 사라진 시간들이었다.
그가 아무리 이 남자와 시간을 보내도 하룻밤이면 전부 없었던 일이 되어버린다. 오로지 요한만이 그 굴레에 남겨져서 영원히 이 사람을 기억하고…기억하고 또 기억해서….
“조슈아 경….”
“네?”
요한은 입을 달싹였다. 이것을 말한다고 해도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을지도 몰랐다.
당신에게까지 가능성을 시험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검은 피를 토하며 자신의 멱살을 틀어쥐던 조슈아의 얼굴이 사라지질 않아서…. 살아있는 당신을 만나는 게 나는 이 지긋지긋한 운명 속에서도 유일하게 기쁜 순간이기 때문에….
“제 생일 선물을… 준비했다면서요.”
“…그, 네? 어…? 음.”
참을 수가 없었다.
“어제 만난 당신이 알려줬습니다.”
“…….”
“손목시계라고 하던데요. 절대 일부러 산 건 아니고 어쩌다보니 휩쓸려서… 거의 떠밀리듯이 준비는 했는데 건네 줄 마음은 없어서 아마도 책상 서랍 속에 잠들어 있을 거라고….”
요한은 고개를 기울이며 작게 웃었다. 당황했는지 새하얀 얼굴의 조슈아가 허둥거리고 있었다. 누가 보면 독살을 들키기라도 한 사람 같았다.
기사단에서는 생일마다 파티를 조촐하게 열곤 했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준비에 매달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주변에 알려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남자가 이 시점의 ‘요한 테일드’의 선물을 준비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지만.
한 대 치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몸으로 자신을 덮쳐누르고 어떻게든 살리겠다고 능력을 폭주시키던 조슈아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가느다란 팔뚝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어차피 되돌아간다고 말했는데도.
‘구해 달라고 말해요…. 도와달라고 해.’
어제의 당신이 오늘의 당신에게 나를 맡겼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놀랄까.
‘당신이 수십 명의 목숨을 살렸으니까… 너 하나쯤은 나한테 살려달라고 부탁해.’
믿을까. 말도 안 된다고 화낼까.
“조슈아 경.”
요한은 순간적으로 목이 막혔다. 말도 안 되지만 고작 이 한 마디를 누구에게도 뱉어본 적이 없었다. 당신을 무수히 살리는 그 동안에도… 한 번도 꺼내볼 각오를 하지 못했더랬다. 조슈아가 당황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게 보였다.
“거짓말 같겠지만….”
“아니…. 저기, 요한 경….”
“나는 당신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케이크를 자르면서… 준비했다는 그 선물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잠시만요… 아니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사색이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조슈아가 가여웠지만, 그를 달래줄 정신까진 없었다. 조리 있는 말이 조금도 나오질 않았다.
“…공손하게 부탁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억지로 웃는 얼굴을 지어보였지만 눈앞이 흐렸다. 이제 다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우수수 쏟아졌다. 아. 더는. 바라지 못했던 소망을 당신의 앞에서만 담을 수 있다니.
진심으로 죽음으로써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딱 그만큼, 나는….
“살아서, 내일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떨쳐내고 떨쳐내도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자신의 운명에 뒤섞이러 오는 남자.
어쩌면 당신이 나의 기적이기를 바랐다.
END3. 나의 기적